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지정된 곳입니다. 한국은 그 독특한 역사와 자연경관을 인정받아 다수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에 위치한 석굴암과 불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에 지어진, 신라시대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불교 유적입니다. 석굴암은 불상을 모신 석굴이며, 불국사는 사찰 건축물입니다. 두 유산은 모두 경주시 동남쪽의 토함산(吐含山)에 있으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두 유산은 8세기 후반에 같은 인물이 계획해 조영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완공되었습니다. 석굴암은 화강암을 다듬어 돔의 형태로 쌓아 올린 석굴 사원인데요, 주실(으뜸이 되는 방)의 중앙에는 거대한 본존불상이 안치되고, 그 주위로 38구의 불상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불국사는 돌을 다듬어 만든 석조 구조물과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어 고대 불교건축의 정수로 평가됩니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옛 신라인들의 창조적인 예술 감각과 뛰어난 기술이 집약된 건축물로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그 빼어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경남 합천의 가야산에 위치한 해인사는 흔히 ‘법보 사찰’로 불리는데요, 13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이곳에 봉안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대장경 목판을 500년이 넘도록 훌륭히 지켜준 특별한 목조 건물이 있습니다. 목판 보관을 목적으로 건립된 세계 유일의 건축물인 ‘장경판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장경판전은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현재도 창건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요. <대장경> 자체도 전 세계 불교 역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판전 또한 매우 아름답고 탁월한 건물로서 건축사적인 가치가 큽니다. 특히 자연적으로 환기는 물론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도록 과학적으로 건물을 설계하고 배치한 점은 지금 봐도 놀랍기만 합니다. 이 덕분에 귀중한 목판들이 오랜 세월 동안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것이지요. 해인사 장경판전은 이러한 건축적, 과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1995년에 세계유산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종묘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왕이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문무백관과 함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렸지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종묘는 왕실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보여주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는데요, 임진왜란 때 선조가 급박하게 피난길에 나서면서도 종묘에서 위패들을 모시고 갈 정도였지요. 종묘는 유교문화의 조상숭배 사상과 제사의례를 바탕으로 왕실의 주도 아래 엄격한 형식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특히 중심 건물인 정전은 옆으로 길게 펼쳐진 1층 건물로 웅장하면서도 엄숙한 느낌을 줍니다. 지붕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로도 꼽히지요. 이처럼 정면이 매우 길고 건물 앞마당과 일체를 이루는 건축물은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종묘는 현재에도 조선시대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종묘제례’라 불리는 제사의례가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지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유교문화가 독특하게 결합된 단아하면서도 신성한 건축물로서 현재까지도 제례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1995년에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창덕궁
창덕궁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궁궐입니다. 혹시 율곡로를 지나면서 ‘돈화문’을 보신 적이 있다면, 이미 창덕궁의 입구까지 오셨던 셈입니다. 돈화문이 바로 이 궁궐의 정문이기 때문이죠. 창덕궁은 3대 왕인 태종 때 지어졌는데요, ‘창덕’이란 ‘덕의 근본을 밝혀 창성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창덕궁은 전통적인 풍수지리 사상과 조선 왕조의 유교 이념이 적절하게 조화된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힙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해 건물을 세운 까닭에 궁궐 건축의 전형적인 격식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유교 이념에 따라 상징적, 기능적으로 배치된 궁 안의 건물들은 조선시대의 독특한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후원의 아름다운 조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왕실 정원으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창덕궁이 보여주는 우리나라 궁궐 건축의 다양한 특성, 그 배경이 되는 풍수지리 사상과 유교 사상, 그리고 자연 지형을 존중한 조경 등의 가치를 인정해 1997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화성
화성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성곽입니다.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는 갖가지 개혁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던 군주였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비명에 간 자신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절절히 그리워했던 효자로도 유명합니다. 사도세자는 당쟁에 휘말려 뒤주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세자였지요. 정조는 즉위한 이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천하명당으로 꼽히던 수원 화산(지금의 화성)으로 옮겨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지요. 이때 화산 부근에 있던 고을을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고, 주민을 함께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성곽을 쌓는데요, 이 성이 바로 화성입니다. 수원 화성은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근간으로 세워졌지만, 그의 원대한 꿈이 깃든 개혁정치의 시험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정조가 권세를 쥔 신하들의 터전인 한양에서 벗어나, 신도시 화성을 중심으로 당파 정치를 근절하고 새로운 왕도 정치를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세워진 화성은 이전의 조선 성곽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새롭게 축성된 성이라는 점, 그리고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의 개념이 하나로 합쳐진 성곽도시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또, 성을 쌓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동서양의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도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규장각의 문신 정약용이 고안해 낸 거중기와 녹로(도르래 기구)를 사용해 큰 석재를 옮기고 쌓은 사실이 그러한 예이지요. 이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어용 시설이 다양하게 설치된 점, 주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점도 화성이 지닌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